불상  보살상  나한조사상  신장상   

                          불    상(佛   像)

 

부처란 깨달은 이로서 불상 역시 깨달은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대승불교가 나타나면서 등장하면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하여 여러 종류의 부처가 등장하고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 미륵불 등과 천불이나 3천불 등의 시간불, 53불이나 만불 같은 다불 그리고 4방불, 5방불 등의 방위불이 만들어졌다.

석가모니불상(釋迦牟尼佛像)

인도에도 초기의 불상은 거의가 석가불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시대나 석가불이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룡사 장육불상은 바로 석가불상이며, 석굴암의 본존불도 아미타불이라는 설이 새롭게 주장되고 있지만 세상에는 석가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불은 삼국시대에는 서 있는 입상일 경우 시무외, 여원인의 수인을 짓고 있으며 좌상일 경우에는 선정인의 수인을 짓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통일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토함산 석굴 본존상처럼 항마촉지인을 짓는 것이 거의 통례로 되었다. 대형의 대웅전에는 석가삼존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 등 삼세불을 봉안하거나 드물게 석가불의 좌우로 아미타불과 미륵불 등 삼불을 봉안하기도 한다.

협시보살상은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좌우에 배치되거나 관음보살상과 허공장보살상, 관음과 미륵보살상도 배치될 수 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불교사원의 대웅전에 주불로 봉안되거나 응진전, 나한전, 영산전, 팔상전 등에도 주불로 봉안되었는데, 응진전 등에는 석가불상의 좌우에 미륵과 제화갈라보살 등 수기 삼존불을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상에서 언급한 석가불의 도상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불교 교주로서 모든 교파에서 신봉되지만 종파불교에서는 법화경에 의한 범화, 천태사상의 본존불이다.
둘째, 수인은 석가5인을 모두 지을 수 있으나 항마성도를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이 별인이다. 셋째, 협시보살은 문수, 보현, 관음, 미륵보살 등이며, 삼세불로서의 협시불은 약사불과 미타불 또는 미타와 미륵불이며, 삼신불의 우협시불도 된다.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

현상세계에 나타난 화신 부처님의 원래모습으로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가 비로자나부처이다. 그래서 진신 또는 법신이라 말하고 있다. 비로자나는 범어로 ‘vairocana’ 인데 한문으로는 ‘遍一切處, 光明遍照, 遍照’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즉 불의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대광명전 혹은 대적광전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불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하는 경우도 많지만, 불전이 클 경우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불이 협시하는 이른바 삼신불을 모시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 불상은 화엄경의 주존불로 화엄종에서 주예배불로 존숭받아 크게 유행을 본 불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 신라가 시작되면서부터 비로자나불상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큰데, 가령 766년작인 석남암사 비로자나불처럼 지권인 비로자나불을 8세기 주엽부터 조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8세기 당시의 화엄종에서는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시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9세기 중엽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유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9세기 중엽부터 약 반세기 정도는 당대의 걸작들은 물론 가장 많이 만들어진 불상이 바로 비로자나불인 것으로 보아 이 불상이 가장 인기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비로자나불은 지권인을 짓고 있는데 신라시대에는 주먹을 가슴에서 아래위로 포개고 밑의 왼손 검지를 오른손 주먹이 감싼 모양이다. 이런 모양의 지권인은 고려시대 후기부터는 주먹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이 유행되어 신라시대의 지권인의 손모양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만다.

신라시대의 석남암사 석비로자불좌상, 보림사 비로자나철불, 동화사 비로자나석불, 도피안사 철불, 축서사 비로자나석불 등 당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무수히 있다. 큰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 노사나, 석가불 등 삼신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협시보살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법수사 비로자나불상과 불국사 석조비로자나불상 등의 예에서 잘 보이고 있다. 이상에서 말한 비로자나의 도상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조성사상은 화엄사상을 위주로 선과 밀교사상이 가미되어 있고, 화엄종의 주존불이며 선종과 밀교의 주불도 된다.
둘째, 수인은 지권인, 협시보살은 문수, 보현보살이다.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란 유명한 불경구절처럼 아미타불상은 관음보살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던 보살이었다.

아미타불은 영원한 수명과 무한한 광명을 보장해주는, 즉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영원한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서방극락을 주재하면서 뭇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분이다. 말하자면, 어떤 중생이라도 착한 일을 하고 아미타불을 지극 정성으로 부르면 서방극락의 아름다운 정토로 맞아 가는 그런 부처님이다. 아미타불은 신분의 고하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보다 평안한 삶과 안락한 정토세계를 보장해주는 부처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특히 하층민들에게는 구세주로 절대시되었다.

이 부처에 대한 설명은 이른바 정토삼부경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극동에서는 이 부처님만을 특별히 신봉하는 정토종이라는 종파까지 생기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도 삼국통일시대부터 화엄종, 법상종 등의 인기 절정의 부처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불상으로 가장 많이 조형화되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백률사의 소조 아미타불상과 중생사의 소조아미타불상 등은 신라 아미타불상의 대표적인 예이며, 황복사탑 순금아미타불상, 감산사 아미타석불, 굴불사 석주아미타불상,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상, 실상사 아미타철불상 등은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걸작들이라 하겠다.

아미타불의 형식적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수인이다. 보통 아미타정인과 9품인을 짓는 것이 원칙이며, 이러한 수인은 통일신라 비암사 비상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8세기중엽부터는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좌우 협시보살은 관음, 세지 보살이 가장 보편적이며 관음과 지장 또는 8대보살도 고려시대부터 즐겨 배치되고 있다. 그러나 8대보살을 봉안하여 군상을 이루고 있는 예도 많다. 8대보살은 관음, 세지(또는 허공장), 문수, 보현, 금강장, 제장애, 미륵과 지장 보살 등이다. 이상에서 말한 아미타불의 도상 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아미타사상 혹은 정토종 사상을 기본으로 통일 신라시대에는 화엄종의 주존불이었다. 둘째, 수인은 아미타 9품인을 짓고 있으며, 협시보살은 관음과 세지, 관음과 지장보살 또는 아미타 8대보살이다.

고려시대부터 이 불상이 봉안되는 불전을 무량수전, 극락전, 아미타전 등으로 불렀다.

약사불상(藥師佛像)

불교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질병의 고통을 없애주는 의사격인 부처도 크게 요구되었는데 여기에 부합해서 출현한 부처가 바로 약사불이다. 특히 민중들은 극락의 아미타불과 함께 의사로서의 약사불을 절실히 고대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약사불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중엽부터이지만 8세기 중엽에 들어서야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약사불은 약사경 계통의 사상에서 유래하며, 초기밀교인 총지종에서 체계적인 약사신앙을 신봉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미타불과 함께 종파를 초월하여 널리 신앙되고 있다. 분황사의 금동약사불상과 같은 대작 불상이 조성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백률사의 금동약사불, 방어산 마애약사불, 용장사계 석약사불 등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당대의 걸작들이다.

약사불은 다른 불상과는 달리 손에 지물을 가진 계인을 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손에 약이 든 약합이나 보주를 들고 있는 약기인을 짓고 있다. 협시상으로 일광보살 및 월광보살과 함께 약사12지신상을 거느리고 있는 것 역시 독특한 점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약사불의 도상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약사경 계통의 사상에서 유래하였고, 총지종에서 조직화되었다.
둘째, 수인은 약기인을 짓고 있다.
셋째, 협시는 일광, 월광 보살과 12지신장이다.

미륵불상(彌勒佛像)

메시아로서 널리 알려진 미래불이 곧 미륵불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나라가 혼란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지상낙원을 꿈꾸게 된다. 이러한 혁명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복음적인 부처가 바로 미륵불이다. 후삼국시대의 궁예가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한 것을 단적인 예 이다.

미륵사상은 미륵상생경과 미륵하생경 등 미륵정토에서 유래하는데 조직화된 것이 법상종이며 통일신라 때부터는 이것이 미륵사상 및 미륵존상을 주재했다.

원래 불상의 형태로 나타나기 전 미륵은 보살이었다. 이는 도솔천을 주재하는 보살로, 56억 7천만년 후가 되면 석가불이 미처 제도하지 못한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기 위해서 용화수라는 나무 밑에 부처님의 모습으로 내려와 세번 설법하여 모든 중생들을 남김없이 제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용화전이라 불렀던 것이다. 미륵불상이 의자에 앉아 있는 의좌세의 불상과 입상인 경우 용화꽃 봉우리나 꽃가지를 든 용화수인을 짓고 있다.

그리고 협시보살은 청광과 신광 보살 등 삼존불이다.

하생경에 의한 미륵불상의 대표적인 작품은, 고신라시대의 삼화령 미륵삼존, 단석산 마애미륵불상 등이며, 상생경에 의한 미륵보살상으로는 국보 78호 및 83호 금동미륵 반가사유상과 감산사 석미륵보살상 등이 저명하다.

이상의 도상특징을 요약하면,
첫째, 미륵존상의 사상은 미륵하생경 사상과 상생경 사상에서 유래하며, 통일기부터는 법상종에서 조직화된 주존불이다.
둘째, 상생경에 의한 미륵보살의 경우 수인은 오른손을 턱에 괸 사유인을 짓고, 자세는 반가자세를 취한다. 또 하생경에 의한 미륵불상의 겨우 수인은 용화수인을 짓고, 좌상의 자세는 의좌이며, 형태는 16장(장) 혹은 대불이다.
셋째, 협시는 불상의 협시로 청광 및 신광 보살이다.

방위불(方位佛)

4방, 8방, 10방 등 방위는 계절과 함께 우리 인간생활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나쁜 일이건 여러 방면으로부터 들어오기 마련이다. 좋은 일은 즐겨 받아들이고 나쁜 일은 끝까지 막아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예부터 방위에 대한 믿음이 깊지 않을 없었다. 방위를 최소한으로 나누면 동서남북의 4방이고, 여기에 상하를 합치면 10방이 된다. 자기 이외의 모든 우주는 이 10방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가령 불교에서 시방세계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우주 전체를 상징하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방위신앙도 습합하여 4방에 부처님이 상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부처님을 흔히 4방불이라 부르는데, 4방불은 경전이나 종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세기부터 4방불이 생겨났다. 백제의 예산사방불이 가장 최초이며, 경주에 있는 탑곡마애불, 즉 신안사 4방석주불은 7세기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4방불이다. 금광명경과 관불삼매해경의 경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는 동의 아촉, 남의 보상, 서의 무량수, 북의 미묘성불 등이 있다. 8세기 중엽부터의 4방불은 좀 다르게 표현된다. 다라니집경이나 공작왕주경과 약사신앙의 영향으로 동에는 약사가 나타난다. 유명한 굴불사의 4방불, 경주남산의 칠불암 4방불 등이 이에 속하며, 그 이후부터 탑의 1층탑신 4방불에도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4방불의 사상을 발전시킨 밀교는 중앙에도 부처님을 두어 4방불을 통괄하는 본존불

로 삼았다. 중앙불은 경마다 다르지만 ‘일자불정륜왕경’ 과 같은 경전에서는 석가불로 ‘대일경’ 등에서는 비로자나불로 보고 있으며, 칠불암에도 이러한 5방불이 나타나고 있다.

천불(千佛)

대승불교의 위대한 특징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철저한 평등주의 사상이다. 이 점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천불이다. 즉 과거에도 천불, 현재에도 천불, 미래에도 천불이 있다는 것으로 어느때나 무한한 부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특징을 웅변해주는 이러한 천불은 예부터 많이 조성되어 예배되었다. 유명한 고구려의 연가7년명불상, 성주사의 소조3천불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